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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차차차'

[별+별 시선] 네가 한 짓을 똑똑히 봐
[1호] 반차별, 작성일 : 09-05-30 05:25 / 조회 : 4,070
 별별시선 2 네가 한 짓.txt (4.6K) [26] DATE : 2009-05-30 11:43:15

[별+별 시선]

       네가 한 짓을 똑똑히 봐





'완전 무시다리'
'저 곤봉다리 좀 봐라'
'하여간 페미니스트들이란 것들 자격지심 하고는'
'지들이 못생겨서 생긴 열등감을 저렇게 드러내나?'……


흔해빠진 이 댓글들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6회 마지막 안티미스코리아 대회에 참가하며 진행했던 공연 사진이 모 포털사이트 메인에 걸리면서, 나는 악플의 위력을 처음으로 체험했다. 처음에는 '흥~!' 콧방귀를 날릴 정도의 평정심과 여유를 보이며 같이 공연했던 사람들이나 친구들을 만나 '하여간 마초들'이라 낄낄거리며 웃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이후부터 그 기사를 다시 클릭해 볼 수도, 심지어 마음 편하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도 없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미칠 듯이 화가 났다. 웃고 떠들고 잘 지내다가 뜬금없이 저 댓글들이 머릿속에 떠다니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왜냐구?


저 댓글들을 읽자마자 내가 했던 일은 거울 앞에서 치마를 입고 내 다리를 카메라로 찍어보는 것이었다. 헐…. '도대체 내 다리가 어디가 곤봉다리란 말인가?', 'XX, 너는 얼마나 잘났냐' 이런 생각이 안 들었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런데 카메라에 찍힌 내 다리를 보다가 어느 순간 맥이 탁 풀렸다. 악플에 표현된, '남성'들 익명적인 표현에 투영된 성차별적인 검열과 통제의 시선에서 내 몸이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에 미치도록 소름끼쳤다. 손쉽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익명의 댓글'이 '남성'들에게는 가부장제사회에서 자신들의 권력과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자 수단이라는 사실이 미칠 듯이 부러웠고, 짧은 한 줄의 댓글만으로도 '자고로 여자는 이렇게 생겨야하지 않겠니'라고 말하며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와 검열의 시선을 여성 스스로에게 들이대도록 만들어 버리는 그 남성권력이 끔찍했다.


하지만 악플을 처음 읽는 그 순간, 게다가 그 악플이 향하고 있는 그 구체적인 개인이 바로 내가 되었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할 틈조차 없이, 그 악플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뚱뚱하고 못생기고 열등감에 찌든 페미년'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는 근거들을 찾기 위해 정신이 없게 되는 것이다. 물리적 공간이 아닌 온라인 공간에서, 아니 사실 모든 공간에서 남성화된 시선에서 온전히 벗어난다는 것을 상상한다는 것은 여성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다. 하지만 '남성'들은 자신들이 온라인 공간을 어떠한 방식으로 점유하고 향유하고 있는지, 자신의 댓글의 내용과 방식이 어떠한 조건에서 가능하고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한 사유와 성찰을 거의 하지 않는다. 마치 온라인 공간은 모두가 동등하게 말할 수 있는 주체, 동등하게 점유할 수 공간을 가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남성중심적인 관점으로 구성된 규범과 검열적인 시선 자체에 짱돌을 던지면서 사회적으로 구성된 부당한 이미지들을 전복시키는 상상력과 재기발랄함이 중요하고, 그런 경험들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 여성들에게는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경험들 때문인지, '여성주의적 문화 환경, 여성주의적 공간의 확장'을 활동 목적으로 가지고 있는 언니네트워크에서 활동하게 되었을 때 나는 '아…!'하는 탄성을 내질렀다. '나는 내가 말하고 싶은 대로 맘껏 말할거지롱('남성')' vs '니 댓글 때문에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아니?!('여성')'이라는 어처구니없게 세팅된 이 구도 안에서만 존재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달까.


그리고 최근에는 그 깨달음으로 '악플'을 달아보기도 했다.


2008년의 마지막 달에 언니네트워크 자유게시판에는 '남자들의 주먹을 부르는 여성사이트'라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글이 올라왔다. 그래서 나는 그 글을 읽자마자 댓글을 달았다. 글쓴이가 후에 혹시라도 삭제할 수 없도록, 그래서 이 글이 이 공간에 언제까지 기록으로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자신이 한 행위의 의미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그것이 글쓴이의 책임이자 의무이므로.




사족 : (글쓴이가 해야할 일까지 무급노동으로 설명해주는) 페미니스트는 정~말 '친절하다'



                                       몽MONG(언니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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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 09-06-01 11:18  
필자 이미지가 넘후 좋다고 생각합니다아~
개굴 09-06-01 17:15  
몽님, 완전 공감 백배하며 읽었어요. 특히 마지막 댓글 너무 멋져요^_____^

지배하는 시선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건, 그 시선을 전복한다는 건 만만찮은 내공을 필요로 하는 일인 듯 싶어요. 친절하고 내공있는 언니들 덕분에 기운이 난다니깐요~
몽MONG 09-06-08 21:02  
신기루/ 오호호 감사해용. 예~전에 길거리에서 그린 그림;;;
개굴/ 감사합니다^^ 저도 내공은 없는데... 이제부터 좀 내공을 쌓으려고요. 사실 '내' 공간이라고 생각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 공간에서만큼은 제가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공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요. 만약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포털 사이트였다면, 쉽게 댓글을 달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생각이... '흥' 하면서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겠지만, 계속 분노는 쌓여있었을 것 같거든요. 아무튼 기운이 나신다니, 저도 기쁘네요^^
난새 09-06-09 11:04  
머리에 꽃도 꽂았어. ㅋㅋㅋ 그림 그리는 분이 울 몽이를 완전 파악한거지.
신기루 09-06-12 12:45  
ㅋㅋㅋ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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