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차별공동행동

 [반차별 상상더하기] 세 번째 이야기 다시

 이주, 그 유혹 혹은 좌절
                 일란 (반차별 공동행동 상상더하기팀)

지난 9월 반차별 공동행동 상상더하기 팀은 그 세 번째 시간으로 “익숙한 이방인, 이주민씨 이야기-이주를 둘러싼 다양한 시선”을 마련하였다. 그 자리에 이주노동의 문제를 관심을 갖고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각자 다양한 입장을 나누었다. 우선 주요하게 제기되었던 쟁점 가운데 하나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운동 전략에 관한 것이었다. 이주노동자운동에 있어, 이주민의 정체성을 통해서 전체 노동자 및 노동운동과의 차이를 드러내고, 그 차이를 유의미한 공간으로 확보하면서, 그 속에서 운동의 비전을 모색하고자 하는 의견과 오히려 이주민과 원주민과의 차이보다는 오히려 노동자성을 강조하며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전체 노동자의 문제 속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이 서로 다른 입장은 입장을 제시하는 주체들의 위치에 따른 차이에 기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말하자면 이주민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그 정체성을 긍정할 수 있는 운동의 전략을 강조하는 입장은 대체적으로 원주민이었고, 노동자성을 강조하는 의견을 제시하는 입장은 대체적으로 이주민이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예전에 접했던 한 기사가 떠올랐다. 1998년에 있었던 군산의 한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의 투쟁이 있었다.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은 미군이 감소와 다양한 성산업 시장의 증가에 따른 기지촌 성산업 시장이 위축되고,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의 위치는 더욱 열악해지는 상황에서, 이주 여성들이 기지촌 성산업에 유입되는 것을 저지해달라는 요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정부와 지역 시민단체들에 자신들의 위치에서 이주 여성들의 유입을 이해해달라는 호소문을 작성하였는데, 그들의 근거는 성노동자로서, ‘외국인 성노동자’들의 유입으로 인한 생계의 위기였다. 당시의 기사를 접하면서,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이 스스로 성노동자로 위치를 설정하는 모습에서 긍정적인 힘을 느꼈던 반면에, 이주여성들을 바라보는 그네들의 시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이주노동자와 원주민노동자와의 갈등은 그야말로 한 국가 내에서 시장경쟁이 비슷한 계급에서 발생한다. 말하자면 중산층 이상의 계층에게 이주노동자는 시혜와 사회적 배려의 대상이지만, 동일한 계층의 노동자들에게는 경쟁의 대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주노동자운동의 전략은 노동자성을 강조하는 동일성과 이주와 원주민의 위치에 따른 차이, 그 속에서 발생하는 차이와 차별 등에 대한 서로 다른 가치판단 속에서 채택되는 것 같다. 상상더하기 시간에는 이러한 고민들을 더 발전시킬 수 없었지만, 이주노동자의 운동 전략에서 중요한 쟁점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 속에서 아마도 많은 활동가들은 자신의 활동 속에서 어떠한 연대를 모색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야말로 다양한‘상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논쟁이 진행되면서, 베트남 출신으로 한국인 여성과 결혼경
험이 있는 한 이주남성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이주’에 대한 성별에 따른 다른 경험들을 왜 섬세하게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대체적으로 이주에 대한 젠더적 접근은 국제결혼한 이주여성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여성들의 이주경험이 ‘결혼’을 매개로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국제결혼을 통해서 정착한 이주남성들의 경험은 여성들의 경험과는 전혀 다른 관점과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주남성이 차별을 강하게 느끼는 지점은 가부장제 사회라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남성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했을 때이다. 예를 들어 그 베트남 남성은 자신의 성씨를 자녀에게 남기는 것, 아버지로서의 권리가 한국사회에서는 자녀들이 차별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갈등이 된다고 했다.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성씨를 물려주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그렇게 되면 자녀들이 학교에 가서 차별을 받아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성을 물려줄 수 없어요. 이것은 차별이에요”다양한 성씨가 공존하는 사회, 그러한 문화적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와 가부장제 내 남성의 권력이나 욕망이 인정되는 것, 그 사이에 대한 긴장감에 대해서 그 동안 고민해보지 못한 문제였다. 결혼으로 매개되는 여성의 이주만이 아니라 남성의 이주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많은 언어가 부족한 것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문제로 느껴졌던 것은 바로 이 국제 결혼한 이주여성들의 경험이다. 이주여성들의 국제결혼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이주여성들을 자신의 삶에 능동적 주체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동시에 가부장제 사회 내에서 여성들의 위치를 함께 비판할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들이 이루어졌다. 더욱이 결혼을 둘러싼 여러가지 문제들을 느끼고, 새로운 삶의 전략으로서 비혼을 선택한 여성들과 결혼을 매개로 이주한 여성들 사이에 어떠한 연대의 지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한 쟁점으로 제시되었다. 결혼은 여성들을 분류하고, 계층화하며 갈등적 상황으로 내몬다. 이에 토론자로 참석했던 주현숙감독의 말은 이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여성에게 있어, 이주의 경험과 결혼의 경험은 닮아있어요. 자신이 살아온 삶으로부터의 단절이죠. 한 여성 개인의 삶을 단절시키는 이주와 결혼의 특징으로부터 연대의 지점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주현숙씨는 이주여성들에게 있어 이주의 경험은 단지 강요된 선택만은 아니며 스스로 삶의 개척하기 위한 적극적 선택이라는 것도 고려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다양한 쟁점을 던지며, 포럼이 진행되는 동안, 한 가지 장면이 겹쳐졌다. 

2003년도 9월 초, 삼성 코엑스 전시장에서는 “해외이주, 이민박람회”라는 특이한 이벤트가 있었다. 이 박람회에는 이틀 동안 만 오천 명의 관람객이 몰려 일대 성황을 이루었다. 특이했던 것은 통상 자녀의 교육을 위해 이민을 선택한다는 40,50대들이 절대 관람객의 절대 다수를 차지했던 것과 달리,20대 신혼부부나 구직을 필요로 하는 청년실업자들의 수가 증가되었다. 뿐만 아니라 한 홈쇼핑 채널에서는 ‘캐나다 이민상품쇼’를 했었는데, 이 쇼는 80분만에 홈쇼핑 사상 최고의 매출액인 175억 원을 거뜬히 올렸다고 한다. 이토록 이민을 원하는 이유로 “한국사회에 불만이 많아서”가 1위였다. 한국 사회에 대한 불만을 느끼고, 이주의 욕망을 꿈꾸는 사람들의 연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그 불만의 핵심은 다른 말로 바꾸자면, 차별을 느끼지 않고 차별받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그 어떤 이민의 사유보다 비극적이고 근본적이다. 그렇다면 한국으로 이주한 이주민들에 대해서 그들이 속한 국가의 원주민들은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볼까가 궁금해졌다. 이러한 이주민들이 자신들의 국가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그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역시도 궁금해졌다. 

누군가 이주의 경험이 원초적으로 지니고 있는 힘, 문화적 다양성 경험을 통해서 보다 긍정적인 삶을 기획할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유학, 언어연수, 관광 등 역시 이주이며,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고, 그것은 자신의 삶을 기획하는 근본적인 힘이 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이주의 경험이 삶을 기획하는 긍정적인 힘이 될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마련되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