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차별공동행동

 [기획기사 6.]

 세계인권선언,그림의 떡이 아니기 위하여
                   정영섭 (이주노조 사무차장)

세계인권선언이 제정된 지 60년이 지났지만, 이주노동자를 포함하여 전 세계의 민중들은 제대로 된 인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세계의 이주민은 약 2억 명으로 추산되는데 통계치에 잡히지 않는 숫자까지 포함하면 이를 훨씬 넘어설 것이다. 한국에만도 117만 명이 넘는 이주민이 있고 그 가운데 이주노동자는 60~70만 명이고 이주노동자 중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21만 명이다. 

세계인권선언에서는 제13조에서 이전과 거주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이주할 권리와 선택한 곳에서 거주할 권리, 이주한 국가 내에서 효과적으로 보호받고 존중받을 권리를 규정한다. 또한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여 제정된 UN 이주노동자 협약(‘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를 위한 국제협약’)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등록이건 미등록이건 비자 상태에 관계없이 모든 이주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 중심의 세계화 시대에 자본은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고 있고 자유롭게 착취하는 권리를 부여받고 있지만 노동의 이동은 국경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새로운 삶의 기회를 찾아 다른 나라, 다른 땅으로 이주하는 것은 그러한 눈에 보이는 벽을 넘어야 하는 것이고, 이주한 장소에서 사회적 차별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벽도 넘어야 하는 험난한 과정이다. 예컨대 북아프리카에서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로 가기 위해 보트를 타다 숨지는 많은 사람들, 멕시코에서 미국 국경을 넘다가 총에 맞아 죽는 사람들은 오늘날 이주민이 처한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세계화 시대에 오히려 국경은 그 장벽이 더 높아지고 통제가 더 강화되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인 것이다. 유럽도 EU 공동체를 표방하며 세계시민으로 스스로를 표상하려 하지만 유럽 내부적으로만 그러하고 어느 경계는 더욱 세게 닫아걸려고 하고 있다.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을 권리, 안전하게 일할 권리, 다치면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 멸시받지 않고 인간다운 존중을 받을 권리, 성차별 당하지 않을 권리, 이주아동이 교육받을 권리, 최소한의 주거환경에서 살 권리 등 이주민을 둘러싼 상황은 인간으로서 ‘최저선’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현실이 그러한 최저선을 밑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나라 정부는 그 최저선도 분에 넘친다며 이를 더욱 낮추려하고 있다. 최저임금에 숙식비를 포함시켜 임금을 깎으려고 하고, 시도 때도 없는 마구잡이 단속으로 존재 자체를 없애려 들고 있다. 한국이 배출했다는 그 대단한 유엔사무총장도 틈만 나면 이주민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입으로라도 호소하는데 말이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사실 인권선언과 이주민 협약(한국정부는 아직도 이주민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고, 비준할 마음도 없다고 얘기한다)은 그림의 떡과 같다. 아마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우리사회의 ‘유령’으로 살아가기를 강요받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선언과 협약뿐만 아니라 가까이서 피부로 접할 수 있는 환경의 변화일 것이다. 그 변화는 어떻게 올 수 있을까? 오바마처럼 ‘Yes, We Can'을 주술처럼 외치면 되는 것일까. 우리 곁의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우리의 권리, 인간의 권리를 얘기하고 손을 맞잡는 것이 아마도 더 빠른 길일 것이다. 그렇게 글자에 숨을 불어 넣어야 권리가 살아나지 않을까. 이번 세계 이주민의 날(12월 18일)에는 이주노동자 권리협약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읽어봐야겠다.
'같은 사람, 같은! 노동자, 같은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