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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차차차'

[별+별 시선] 악플 유혹에 대한 기억, 그리고 고백
[1호] 반차별, 작성일 : 09-05-30 04:23 / 조회 : 3,610
 별별시선 4 악플 유혹.txt (7.1K) [25] DATE : 2009-05-30 11:45:02
[별+별 시선]

 악플 유혹에 대한 기억,
 그리고 고백
 짧고 강렬하게 제압하고 싶은 어떤 욕망




친하게 지내던 후배 녀석과의 인터뷰 기사를 쓴 적 있다. 그는 ‘조선족’(? ‘중국동포’? 헷갈린다...)인데, ‘조선족’으로서 중국과 한국에서 당한 차별의 기억을 이야기해주었다. 차별의 기억을 새롭게 끄집어 내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다는 게 힘든 일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흥분하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의 기억을 꺼내놓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은 그 사람들의 행동도 이해한다”며 평온하게 이야기했다. 오히려 듣는 내가 안타깝고 속상했다. ‘아니, 어쩜 이럴 수가…4가지 없는 ××들’하고 생각하며 혼자 삼켰다. 그런데 그 기사가 나가고 며칠 후 댓글이 달렸다. 그 댓글은 인터뷰한 내 후배뿐만 아니라 한국에 있는 모든 ‘조선족’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사돈에 팔촌”까지 들먹이며 “돈에 눈이 멀어 한국에 온 사람들”로 매도했다. 가관이었다.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너무 화가 났다. 하지만 나보다 훨씬 더 큰 상처를 받았을 후배를 생각하며 댓글을 달아 차분히 설득하려고 애썼다. 나까지 흥분하면 후배가 더 힘들어질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불행히도(!) 내가 단 댓글 밑에 먼저 댓글을 쓴 사람이 다시 쓴 악플은 더 가관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댓글들을 후배가 봐버렸고, 후배는 분노를 넘어 공황 상태에 빠져버렸다.





나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자기 말만 내뱉으면 듣는 사람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건가? 자기가 하는 말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차별하고 어떻게 상처를 주는지 안중에도 없는 건가?
이런 *&%$#@!!! 마치 내가 모욕당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가 느낀 이런 인간적인 모멸감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다. 반사! 너도 한번 당해봐. 눈 앞에 있었으면 당장 멱살이라도 잡았을지도 모른다. 너 내 눈 앞에 없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 화가 나더라도 다시 한번 그 악플러를 설득하려고 애쓸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설명하는 건 그의 ‘쿨함’에 비해 너무 구질구질하게 느껴졌다. 차별한 인간은 다른 어떠한 설명도 필요 없이 저리도 쿨하게 내질러버리는데, 왜 차별 당한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차별당하고 상처받았는지 설명해야 하는 건데? 그것도 상대방이 알아들을지 못 알아먹을지 확신도 들지 않는데. 아니, 못 알아들을 가능성이 크지. 지금 내가 너의 댓글은 나에게 차별적이었고 너의 차별로 인해 난 이렇게 상처받고 고통받았다고 주절주절 늘어놓는다고 해서 공감을 받아낼 수 있을까? 어림 없는 소리!

그렇다면 저 인간이 저렇게 행동했겠어! ‘차별’이라는 게 그렇게 만만해보이지도 않았다. 그때 내가 원했던 건, 구질구질하게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짧고 강렬하게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었다. 평소라면, ‘난 너의 악플로 전혀 상처받거나 주눅들지 않아. 쳇! 그따위 악플,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진부하고 상투적인 악플. 그래, 니 한계는 거기까지야. 차라리 귀엽게 봐줄게’ 정도로 생각하며 그냥 넘어가겠지만, 유독 마인드컨트롤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 날도 ‘아휴, 이걸 그냥 콱!’하는 생각으로 어떻게 상대방을 쿨하게 제압할까 고심하며 자판 위에서 손가락을 달달 떨고 있었다.



뭐라고 댓글을 달지
?
“이런 병쉰 새키. 너 완전 병맛. 꺼져.”라고 할까? 아냐 아냐. ‘병신’은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니까 차마 내가 쓸 수는 없지. 아님 “걸레같은 년. 더러워. 너 사실 초딩이지? 가서 메이플이나 해라”고 해버릴까? 근데 상대방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 수가 없잖아. 그리고 왠지 ‘걸레’는 ‘년’이라는 말에만 따라다니는 것 같아 그것도 찜찜하고…초등학생들을 싸잡아 무시한 것 같기도 하고……. 흐음...끙...그럼 “너 사실 오덕후지? 왠지 니가 말하는 게 꼭 오덕하게 말하더라”라고 해버릴까? 아...이것도 쫌...ㅠㅠ


결국 ‘짧고 강렬하게’ 상대를 제압할 만하다고 여겨지는 말들은 대부분 저런 류였다. 물론 나의 ‘쎈스’가 부족해서일 가능성이 훠얼씬 높지만. 이것저것 따지다 보니 저마저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차라리 아무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했어야 하는 건가! 그런 건가!!! 짧고 강렬한 말로 상대를 제압하려면, 뭔가 사회적으로 합의된 상징적인 의미의 말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은 결국 사회적 소수자들을 비하하는 말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제압하고자 하는 상대방을 쉽고 간단하게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소수자’로 낙인찍으면서 ‘소수자’에게 붙어 있는 온갖 종류의 부정적인 사회적 의미와 편견들을 고스란히 상대방에게 옮겨다 붙이는 것.

사소한 듯 보이는 사적인 관계에서도 그런 ‘힘’(사회적 효과)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그땐 심지어 부럽기까지 했다!(-_-;; 근데 차별하는 주체에 대해 짧고 강렬하게 제압할 수 있는 말은 없을까? ‘나찌’? ‘호모포비아’? 역시 그런 언어와 사회적 합의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결국 난 악플을 달지 못함으로써 ‘짧고 강렬하게’ 그를 제압하지 못했다. 그때 난 무엇을 어떻게 했어야 할까? 아직까지도 물음표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난 후 고 최진실 씨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녀도 죽기 전에 악플에 시달렸다지? 다시 한번 상처받았을 후배가 생각났다. 그리고 채 아물지 못한 나의 상처도. 그러다가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자신이 누군지 ‘당당히’ 밝히며 자신이 쓴 모든 댓글과 자신의 댓글에 달린 모든 다른 댓글들까지 지워달라고 요구하는 그 사람. 후배의 인터뷰 기사에 기가 막힌 악플을 단 바로 그 사람이었다! 첫 번째로는 그 당당함에 놀랐고, 그 다음으로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요구를 마음껏 하는 그 뻔뻔함에 놀랐다. 그 사람은 고 최진실 씨의 자살과 그에 따른 ‘악플 관련 수사’가 신경 쓰였는지, 자신이 단 댓글을 모두 지워달라고 했다. 자기가 단 댓글의 비밀번호를 잊어버렸다며. 그리고 자신의 댓글 내용이 언급된 다른 댓글들까지 모두 지워달라고 요구했다. 엥? 이건 뭐야. 그의 요청에 따라 그 자신의 댓글은 지워줄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쓴 댓글은 안된다고 했더니, 생떼를 쓴다. 이젠 아예 기사 자체를 지워달란다. 너의 무모함에 박수를, 젠장. 그럼 애시당초 왜 그런 댓글을 달았냐고, 당사자가 받았을 상처를 한번쯤은 생각해본 적 없냐고 물어봤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러니까 지워주세요. 기사까지 다 지우면 될 거 아니에욧!”이라는 그의 당당함에 다시 한번 헐-, 이런 진상.




* 인터넷 악플에 많이 쓰이는 차별적인 용어들(아래 용어들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따이루 활동가가 정리해주었습니다. 아래 단어들은 [국어대사전]에 등록된 단어들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여기서는 일단 ‘따이루식’ 해석임을 미리 밝힙니다. 다른 가능한 해석은 댓글로 좀 달아주세요-)

□ 오글거린다 / 오그라든다 / 오글오글 - ‘헐...오글오글 오그라든다’

: 손과 발이 근질근질거리는 느낌처럼 글이 느끼하거나, 닭살스럽거나, 유치할때 쓰는 말.

*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체장애인의 모습을 비하하는 표현이라는 ‘소문’이 있음. 속이 느글느글하다라는 느낌하고 비슷하게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임.

□ 병쉰 / 병진 - ‘병쉰새키’

: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인 ‘병신’이라는 욕설의 발전(?)한 형태.


□ 병맛 / 병tothe맛 - ‘병맛만화ㅉㅉㅉㅉ’

: ‘병신같은 맛’을 줄여 쓰는 건데 ‘병쉰’ 이런 거와 비슷하지만 이 표현은 보통 만화/동영상/글/사진 뭐 이런 부분에서 주로 쓰임. 말도 안 되거나, 내용이 특이하거나, 재미가 없는 만화를 가리킨다는.


□ 거지같은 년 / 걸레 - ‘더러워, 걸레’

: 위에 거와 비슷하지만 여성들에게 주로 달리는 악플. 창녀같다, 더럽다 뭐 이런 의미로 쓰임.


□ 오덕오덕 / 오덕후 - ‘ㅋㅋㅋㅋㅋ오덕하게 생겼어’

: 원래는 일본만화/애니에 푹 빠져 계신 분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제는 ‘중독자’를 가리키는 말이 됨. 그러다가 요즘에는 ‘여드름 많고 뚱뚱하고 패션 감각 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비꼬아서 쓰기도 함.

□ 초딩 - ‘초딩 시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메이플이나 해라’

: ‘초등학생’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었는데, 요즘은 생각/개념 없이 말하거나 글 쓰는 사람들을 비꼬는 표현으로 많이 쓰임. 또한 요즘 패션트랜드를 못 따라가는 사람의 패션을 ‘초딩패션’이라고 놀리는 데도 쓰임.





                                                          돌진(인권운동사랑방)
* 참고로, 난 악플을 막는답시고 내놓은 대안이라는 ‘인터넷실명제’도 완전 반대한다. 입을 막는다고 차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입을 막을 게 아니라 차별을 없애도록 노력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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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라 09-06-01 12:54  
잘 읽었습니다.
저도 자판위에서 손가락을 덜덜 떨고있던 때가 떠오릅니다.
간단하고 쿨해보이는 악플들. 얄팍하고 선명한 차별과 혐오들.
개굴 09-06-01 16:57  
진상들 참 많지, 잘 읽었소.

따이루는 계속 연재해서 사전 하나 만들지 그래?ㅎ
명숙 09-06-01 19:14  
정말 차별의 용어들은 간단하고 제압하는 상징어가 많소. 근데 그들을 제압할만한 짧고 강렬한 말은 없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다수의 횡포(차별 배제) 속에서 사회적으로 합의를 거친 기나긴 시간의 결과이겠지.
(근데 왜 우리는 유혹에 강한거야^^)
공현 09-06-01 21:30  
다행히 새로운 언어가 하나 생겼지요.
"이런 명박이 같은"
안티고네 09-06-03 22:23  
기사 읽으면서 천천히 혈압 오르고 있다가 지워달라고 떼썼다는 대목에서 빵 터질뻔ㅠㅜ
"명박스럽다"는 정말 요즘 쵝오 욕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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