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차별공동행동

반차별과 ‘인권운동’이 만나니, 좋지 아니한가

박석진 (인권운동사랑방)

“반차별 공동행동은 요즘 뭐해? 맨날 토론만 하는 거야?”

반차별 공동행동(반차공)에 결합하면서 얼마 전까지 많이 들었던 말이다. 회의는 개근상을 줘도 될 정도로 꼬박꼬박 나가지만 뭔가 외부적으로 보이는 활동이 많지 않으니, 그런 질문을 던질 만도 하다. 그런데 그나마 요즘엔 물어보는 사람도 별로 없다.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라더니……. 아무래도 반차공 활동에 속도가 붙지 않는다. 나도 조바심이 일긴 마찬가지다. ‘정말 우리는 토론만 하고 있는 걸까? 책상 위에서 운동이 만들어지진 않을 텐데.’

조바심으로 앞으로 막 달려 나가고 싶기도 하지만, 어디로 달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혼자 달려 나가는 건 ‘공동행동’이 아니잖아……. 반차별 운동과 연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구체적인 차별 사유에 반대하는 것을 넘어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이란 건 뭐지? 연대란 뭘까? ‘함께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에게, 그/녀들에게? 성별, 장애, 성정체성, 국적, 학력, 가족형태 등 다양한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이 만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나는 끊임없이 나에게 던져지는 질문들을 반차공에서 하나씩 대답을 찾아가려고 한다. 찾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한번 해보는 거지, 머.

반차공을 통해 다양한 운동들을 만나면서 알게 되는 것은, 다른 운동에 대해 잘 모른다, 는 것이다. 서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잘 만날 수 있을까. 연애를 생각해봐도 그렇지.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지만 잘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호감을 갖고 만나는 과정 자체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공감할 수 있고 공통점을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연애는 더욱 고조된다. 연애하면 닮아간다고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방에게 믿음을 갖고 그/녀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인다면 자연스럽게 나의 생각과 그/녀의 생각은 닮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차츰 취미, 취향이 비슷해지면 연애는 장기전으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 연대는 연애와 비슷한 것 아닐까? 차별에 반대하는 다른 운동들이 만나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생각을 교류하며 배워갈 수 있을 때 반차별 운동은 만들어질 수 있는 것 아닐까. 꾸준한 연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새삼 느낀다. 서로 단기적인 목적에 따라 ‘기술적으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연대는 이젠 좀 회의적이다. 좀더 말랑말랑하면서도 단단한 연대를 만들어보고 싶다. 거기서 연대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보고 싶다. 비록 뭘 하는지 아직 잘 보이진 않지만,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것으로서 연대의 첫걸음을 떼고 있는 반차공, 좀 기대가 된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어떻게 서로 만날 수 있고, 여성, 이주민 등 다양한 차별 당사자가 함께 차별에 반대할 때 비로소 모든 차별이 없어질 수 있다는 이 지점에서 우리는 반차공의 장기전을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

‘차이를 차별하면 안돼요’, ‘다양성을 존중해주세요’, ‘우리 모두 똑같은 사람인 걸요’ 라는 식의 착한 도덕률로는 차별을 없앨 수 없다. 이런 ‘착한 도덕률’은 차별을 배려와 시혜의 문제로만 생각할 뿐 사회구조와 권리의 문제로 생각하게 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데는 인색하다. 이런 경우 차별의 피해자는 너무 쉽게 대상화된다. “그래, 차별로 당신이 힘들어하고 있으니 내가 당신의 차이를 인정해주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하지만 우리에겐 좀더 못된 운동이 필요하다. 차별로 인한 고통을 인정받고 차별 당하지 않도록 배려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누가/어떠한 사회 구조가 차별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주목하고 공격해야 한다. 차별이 자연발생적이지 않다는 것은 명확하다. 세상에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다른 것들 속에서 특정한 차이들만 ‘차이’로 드러나는 과정은 위계화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위계화된 차이는 차별의 근거가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러한 차별의식이 고정관념으로 사람들의 머리 속에 박혀버린다면, 게임 끝. 차별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공격하고, 그러한 차별적인 구조를 인식하고 있지 않는 한 누구든 차별적인 구조에 일조할 수 있음을 알리며, 차별을 없애는 일이 진정한 평등으로 나아가는 모두를 위한 해방의 기획이라는 사실을 운동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자신감 급하락 ^^;)

어쨌든 반차공은 느리지만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고 있다. 너무 조심스러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온갖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반차별 운동과 만나면서 난 이미 많은 것들을 배웠고 인권운동은 더욱 풍부해질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으니, 이것 또한 충분히 좋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