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차별공동행동

 [신개념 반차별 용어사전]

 콘돔 [Condom]

이번 반차별 용어사전의 주제는 콘돔입니다.

이번 주제인 ‘콘돔’을 다루면서 우리는 콘돔에 얽힌 다양한 시선을 보았습니다. 성별에 따라서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고 성정체성별로 바라보는 것도 달랐습니다. 젠더에 따라 달라지기도, 자신이 활동하는 영역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다양한 시선을 그대로 보여주자는 생각에 다양한 의견을 모았습니다. 콘돔에 얽힌 다양한 시선을 통해 반차별 공동행동의 다양함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 그녀의 콘돔 사용법 ] - 위니

성판매 여성에게 콘돔의 의미는 다중적이며 복합적이고 극단적인 것입니다. 성판매 여성과 콘돔의 관계 역시 성매매 문제처럼 한 마디로 명쾌하게 정리할 수가 없군요. 

#1 콘돔은 그녀들이 ‘일’을 할 때 건강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꼭 필요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성구매자들은 이를 질색하고 손님의 권한으로 거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실에서 그녀들은 콘돔 사용을 강하게 요구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위험을 감수하게 됩니다. 콘돔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안전기구’ 콘돔은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거죠.

#2 어떤 지역에서는 콘돔이 의료기구(?)로 쓰이기도 한다네요. 반복되는 성관계 때문에 질이 빨갛게 부어올라 통증을 느낄 때 그녀들은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물 넣은 콘돔을 꺼내어 냉찜질을 합니다. 콘돔은 신축성이 뛰어나고 재질이 부드럽기 때문에 좋은 찜질기구가 됩니다. 이 민간요법은 다른 여성들에게도 전수되어 일상에서의 고통을 덜어줄 것입니다. 현명한 그녀들이 기특한 콘돔 녀석으로 고안한 생활 속 아이디어랄까요.

#3 성판매 여성들은 일을 하면서 자신의 몸을 잘 돌보기 어렵습니다. 나아가, 내 몸에 대한 당연한 권리를 가질 수 없기도 합니다. 그것은 때로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나타납니다. 업주들이 단속에 대비하여 여성들을 교육할 때, 경찰이 출동하면 콘돔을 삼키라고 지시를 내립니다. 현장에서 콘돔이 발견되면 성매매 사실의 증거가 되어 업주가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들은 콘돔을 껌처럼 돌돌 말아 꿀꺽 삼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속에서 아무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제 목숨은 운에 맡겨야 하나요, 콘돔에 맡겨야 할까요.

[ 손가락 콘돔 ]  - 수수

콘돔은 남성들만 쓰는 거 아냐?  천만에요, 여성들이 스스로의 몸을 즐기고, 다른 여성들과 사랑을 나눌 때 쓰는 손가락 콘돔(finger cot이라고 많이 알려진)이 있는 걸요!

라텍스로 만든 외과수술용 장갑과 함께, 손가락 하나에만 쓸 수 있는 손가락 콘돔도 많은 여성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콘돔 파는 곳에서 쉽게 볼 순 없어요. 보통 남성 성기에 뒤집어 쓰는 콘돔만을 다루거든요. 그래서 안전한 사랑을 나누고 싶은 여성들은 이걸 구하기가 쉽진 않답니다. 물론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구할 수 있지만 애널섹스 용이라는 설명에 난감해 하다가, 한국에선 생산이 안되는지 수입품을 구입해야 합니다. 남성용 콘돔에 비해 크기도 작고 모양도 단순한데 가격은 10배 이상 비싸다니 억울한 일이죠. 출산과 임신과는 무관하게, 다종 다양한 몸들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섹스토이들을 쉽고 값싸게 구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 콘돔으로 하는 고백 ] - 이쁜이

게이들에게 콘돔의 의미는 무엇일까? 인터넷 검색창을 두드려서 나오는 사전적 의미처럼 피임기구나 질병예방을 위한 기구만일까? 아닐 거다. 게이들에게 콘돔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콘돔을 누가 사용하냐에 따라 자신의 성포지션을 나타내 주기고 하고 자신이 얼마만큼 잘 노는지, 자신이 오늘밤에 어떠한 마음으로 게이 커뮤니티에 나왔는지를 간접적으로도 보여주기도 한다. 하룻밤이거, 평생 가는 연애를 꿈꾸는 게이든 간에 그들이 거쳐야 할 것은 첫날밤인데, 첫날밤 상대방이 콘돔을 살며시 꺼냈다면, 어떤 게이는 ‘이런 벅찬년’이라고 비웃을지도 모르고 어떤 게이는 ‘오 준비성 대단한 걸’ 이라고 생각하며 상대방을 평가할지도 모른다. 외려 그의 소지품에서 꽤 많은 양의 화장품이 쏟아져 나와도 그건 당연시 생각하면서, 그가 꺼내든 콘돔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묻어날지도 모른다. 콘돔하나로 나 잘 놀아요, 혹은 저 깨끗하게 놀아요라는 고백서가 될지 우리 이제 즐겨 볼까요? 라는 제안이 될지는 나로서도 섣불리 장담할 수 없다. 여튼 더불어 수용성 젤을 챙기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 콘돔 : 에이즈 이전과 이후 ] - 변진옥

에이즈는 질병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데 소위 말하는 ‘관계’에 내재하는 위험담론을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한 사회에 의해서 관심이 요구되어지는 것으로 선택된 위험은 '진짜' danger와는 관계없이 문화적으로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선택에 의해 콘돔의 의미는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에이즈 이전에 콘돔은 친밀성의 영역이었다. 콘돔은 주로 가족계획 캠페인에 사용되는 그야 말로 피임으로 상징되는 도구였고 따라서 콘돔의 사용은 임신을 해서는 안 되는 사이라는, 어딘지 의심스러운 불륜의 냄새를 드러내곤 했다. 성병의 예방수단으로 사용될 때에도 콘돔의 사용을 권하는 것이 그 상대방으로 하여금 ‘믿을 수 없는’사람이 아닌가라는 회의를 갖게 만든다. 즉, 콘돔은 반친밀성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에이즈 이후 콘돔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게 되는데, 청결(위생)이라는 개인의 미덕과 시민적 의무가 반영된다. 그사회가 주목하고 부각하는 위험에 충실히 복무하는 주체의 의무. 이는 단순히 외부적 위험으로부터 나를 보호한다는 도구적 의미를 뛰어 넘어서, 시민적 의무를 다하는 규범의 체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