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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기사] 촛불을 바라본 네 개의 시선

 넷. 게이, 촛불 광장에서 물을 보다

         오가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이번 촛불 집회에서 있었던 대화 한 꼭지.

  “어맛, 저기 완전 형 ‘식’이에요.”

  “아냐, 입술이 너무 두껍잖아.”

  “어맛, 쟤 잘 생겼다.”  

  “너 솔직히 말해. ‘뚱’ 좋아하지?”

  “에이 뚱보단 약간 건장한 ‘스탠’이고만.”

  게이들의 경우, 자신의 ‘식성’(자신의 좋아하는 스타일을 일컫는 게이들의 은어. 유의어 ‘식’)이 어떻게 되냐는 물음에 곧바로 대답할 수 있는 게 좋을 때가 많다. 그래야 소개팅을 시켜 주더라도 어떤 사람이 적당할지 바로 생각해 낼 수 있고, 누군가가 저 친구가 마음에 든다고 했을 때 “넌 안 돼. 쟤는 ‘뚱’ 좋아하는데 넌 ‘개말라’잖아.”라고 말해 줄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상대가 있을 때 내가 그 사람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면 일찍 마음을 접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게이들은 자신의 ‘식’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는 게 편하다. 

  이런 ‘식’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나 외모다. 얼굴과 몸매, 머리와 옷차림, 태도와 표정은 사람 판단의 가장 일차적 요소다. 이런 것들을 강조하다 보면, 나같이 무심한 사람도(^^;;) 게이 커뮤니티 ‘데뷔’ 1년 만에 주위에 괜찮은 사람이 있는지 순식간에 알아챌 줄 알게 된다. 이렇게 외모를 하도 따져서, 농담 삼아 가장 외모 차별이 심한 사람이 게이들이라는 얘기들을 종종 한다. 외모에 대해 빠르고 솔직하게 반응한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집회라고 다르겠는가. 집회에서 입으로 구호를 힘차게 외치다가도, 눈으로는 부단히 ‘물’을 본다. 언젠가 모 게이 단체가 집회를 나갔을 때, 젊은 사람을 좋아하는 이들은 대학생 대오 옆에 붙자고 주장하고, 나이가 지긋하면서 건장한 사람을 좋아하는 회원들은 농민회 대오 옆에 붙자고 주장하다가, 각자 원하는 집단에 섞이기로 해 모두가 황홀하게 집회를 한 적까지 있다.

  물론 ‘물’을 강조하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소위 ‘물 흐리는 자’에 대한 비난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외모에 대한 차별이며 폭력이다. ‘집회가 클럽이냐?’는 힐난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외려 집회가 클럽이 아니기 때문에 ‘물’이 좋았으면 한다고 소박한 소망을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클럽은 본질적으로 ‘수질 관리’를 위해서 단일한 스타일을 정형화시키는 폭력을 행사한다. 이곳에서 ‘물’은 좋아야만 한다. 그러나 집회에서는 그런 당위나 본질이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집회에서의 ‘물’은 전혀 다른 맥락과 의미를 지닌다. 나는 그것을 촛불 집회에서 보았다.

  촛불 광장에서도 나는 게이로서의 습성을 십분 발휘하여 ‘물’을 본다. 그런데 웬걸, 이 집회, 가히 ‘수질’이 최고라 할 만하다. 주위의 게이들이 여기저기서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정말로 여느 집회와 다르다는 것일 게다. 그래서 집회를 하더라도 조금 더 신이 난다. 해산하기도 싫다. 경찰이 달려들어 훈훈하게 생긴 사람과 헤어지게 만들면 정말이지 밉다.

  생각해 보면 촛불 광장의 이런 장점은 순전히 다양성에서 비롯된다. 밋밋한 깃발과 조끼가 장악한 집회와는 사뭇 다르다. 한눈에 봐도 너무나 많은 스타일들이 살아 있다. 열린 공간에서는 이것이 바로 ‘물’이 좋은 것이다. 이 속에서는 재미있게 열심히 참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길거리를 지나는 시위대가 함께하자고 외치면 괜히 나도 끼어도 될 것 같고, 또 끼고 싶어진다. 끼면 나도 이 속에서 더 예뻐질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들어오게 되고 ‘수질’은 다시 높아진다. 이렇게 해서 참여도도 높이고, 공감할 수 있는 지지자들을 넓히며, 집회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보다 잘 확산되도록 한다. 집회의 ‘수질’은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물’은 촛불 집회에서 다양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낸 요인 중 하나로 꼽혀야 한다. 핵심적인 요인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나는 앞으로도 인권과 평등, 다양성과 반권력을 외치는 집회가 계속해서 물이 좋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는 일은 어렵지만은 않다. 게이들이 강조하듯 ‘미모 관리’가 중요하다. 집회에서도 적극적 참여자들부터가 깔끔한 옷차림과 태도 정도만 보여 주어도 상당히 표가 난다.

  활동가라고, 남성이라고, 노동자라고, 장애인이라고, 가난하다고, 엄숙한 집회라고, 집회가 험할지 모른다고 등등 이유를 대며 너무 수수하게 입고 오는 거, 난 반대다. 단체티나 후원티를 입고 오더라도 이쁜 것으로 고르고, 머리도 좀 매만지고 오는 거 대찬성이다. 단결 대오로서 똑같은 조끼 입고 오는 거, 난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같은 집단이라고 해도 조끼의 모양만 같은 것으로 하고 색은 다르게 만든다든가, 여러 모양으로 연출할 수 있는 길고 야리야리한 같은 스카프를 하는 거, 이런 게 얼마나 근사한가.

  화려할 필요는 없다. 내 신체조건 자체가 미남미녀의 기준과 동떨어져도 상관없다. 그렇지만 좀더 예쁘게 꾸미고 집회에 나갔으면 좋겠다. 이건 가식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을 전하는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 보다 기쁘고 즐겁게 싸울 수 있고,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할 수 있다.

  “오늘 왜 이렇게 이쁘게 하고 나왔어?”

  “응, 나 오늘 이명박 정권 퇴진을 위한 집회에 나가거든.”

  이런 대화는 생각만 해도 간질거리도록 좋지 않은가?

  오늘은 자기 전 화장품 가게에서 산 천 원짜리 팩을 해야겠다. 이것은 순전히 피부 관리를 통해 인권과 평화의 세상을 일구는 데 보탬이 되기 위해서이다. 험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