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차별공동행동

스케치북 위 알록달록 세상 꿈꾸기

신성은 (외국인이주 ․ 노동운동협의회)

“야~ 살색 크레파스 줘봐”

“이거 검은 색이잖아”

“살색 달라니까”

“이건 갈색이잖아”

“이것도 아니잖아, 이건 흰색이라구!”

어렸을 때 파란 지붕의 예쁜 집도 그리고, 화목한 가족도 그리고, 빨갛고 노란 꽃을 스케치북에 한껏 그린 경험이 있다. 다른 것들은 다양한 색으로 스케치 북을 채웠지만 늘 사람은 ‘살색’으로 칠했다. 어려서부터 피부색은 늘 ‘살색’이었다.

어느 날 아프리카 사람처럼 검지도, 유럽 사람처럼 희지도 않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된다. 하얀 병원 가운을 걸치고, 누런 붕대를 손에 가득 감았던 사람. 가게에서 하얀 아이스크림을 들고 그에게 향했다. “이거 드세요” “일하다 다친 거에요?” “...” 좀처럼 ‘말’이 통하지 않아 쭈그리고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그는 대뜸 이런 말을 한다. “형 고마워요” 무엇인가 몇 마디를 더 나누어 보려 했지만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형”, 그는 왜 나에게 형이라고 했을까?

동남아시아 어딘가에서 온 그는 한국의 한 젊은이를 형이라 불렀다.

한국에는 60만 명이나 되는 이주노동자, 13만 명이나 되는 국제결혼 이주여성이 있다. 이들은 언제나 약자이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한국말을 할 줄 모른다고 그렇게 구박을 받는다. 성질이 고약한 사람들은 구박에서 끝나지 않고, 알밤을 때리고, 주먹을 날리고, 공구를 집어던지고, 쇠파이프를 들기도 한다.

공장에는 잘못 다루면 위험한 기계들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공장에서 일하는 게 싫어 오지 않는다. 사장님은 이들에게 기계를 다룰 때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친절히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 어떤 기계에도 이주노동자들이 알아 볼 수 있는 언어로 위험 표시가 되어 있지도 않다. 이들은 그렇게 자신에게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일을 하다, 손가락이 잘리고, 손목이 잘리고, 목숨을 잃는다.

인심 좋은 사장님은 일이 끝나고 삼겹살에 소주 파티를 열어준다. 한국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가 함께 어울리는 즐거운 자리이다. 그러나 그는 무슬림이다. 돼지고기와 술은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괜찮아” 하며 소주와 삼겹살을 강요하고, 잘못하면 한바탕 소동이 난다.

이러한 차별을 보다 못한 사람들이 모였다. 그렇게 이주민들의 억울하고 답답한 사정을 풀어주려 사람들이 모였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세상의 차별을 조금씩 조금씩 없애고 있다. 아이들의 크레파스에 ‘살색’을 없애고, ‘살구색’을 집어넣었다. 이주노동자를 노동자로 부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일하다 다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바꾸었다.

이제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해 오늘도 달려간다. 스케치북 위에 다양한 피부색과 종교와 언어가 담기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형이라 부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을 향해 우리는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