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차별공동행동

 [기획기사] 촛불을 바라본 네 개의 시선

 둘. 미친 소와 미친 인간사냥꾼

                    이상재 (이주이권연대)

  오늘 아침저녁으로 두 곳의 집회에 다녀왔다. 집회를 하게 만든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용량 미달 2MB 정권의 미친 난동이라는 하나의 하수도지만, 그 풍경은 너무나 다른 두 집회였다.

  전날 밤 11시가 넘어 긴급한 문자를 받았다. 이주노동조합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또 다시 표적 연행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지난 연말 지도부 3인이 표적 연행되어 99일간의 농성 끝에 새 지도부를 어렵게 세운지 불과 한 달 만이다.

  분노보다는 서러움과 참담함이 앞선다. 이렇게 또 무력하게 떠나보내야 하는가 하는 자책감에 얼굴이 붉어진다. 고단한 이주노동을 견디는 일도 어려운데, 당신네 문제 당사자들이 먼저 나서서 권리를 외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어렵게 앞세우면서 끝까지 곁에서 함께 하겠다고 약속한 게 벌써 몇 번인지. 그 약속들이 이렇게 쉽게 허물어지는 걸 지켜보는 게 벌써 몇 번인지. 힘없이 쫓겨 다니다 울다 분노를 토할 곳 없어 하늘에 대고 악을 써댄 게 벌써 몇 번인지. 참담하다.

  그렇게 서울출입국사무소 앞에서 열린 규탄 기자회견에 갔다. 모두들 나와 비슷한 기분이었나 보다. 규탄하는 목소리에 그 어떤 희망도 쉽게 찾을 수 없다. 모두들 이 싸움의 결과가 어떨 것인지 이미 여러 번의 학습을 통해서 경험한 결과다. 그래도 이미 뜨거워진 태양과 황금연휴라고 텅 빈 자리를 전투경찰이 채우고 있는 벽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는 없었다.

  또 어떻게는 해야 할 싸움이기에 희망을 끈을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밀고 가는 희망의 씨앗을 본다. 그러나 굳어진 얼굴을 쉽게 펼 순 없다. 어떻게? 어떻게 활동하고 어떻게 사는 게 희망의 끈을 잇는 일인지 갈수록 잘 모르겠다.

  어젯밤 긴급한 문자와 함께 오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미친소 정권을 보면서 더 이상 참기 힘들다고. 그래서 오랜만에 미친소 너나 처먹어라는 집회를 가고 싶은데, 너무 오랜만이라서 쑥스럽다고. 같이 가자는 문자였다. 학교 다닐 때 함께 활동했던 여러 친구들 중에 아직도 집회장을 기웃거리는 사람이 몇 안 되는 관계로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옛 친구들의 문자를 가끔 받곤 한다.

  친구와 저녁을 먹고 청계천에 갔다. 많은 숫자와 활기찬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 효순이 미순이 촛불집회 이후로 이런 풍경을 참 간만에 본 때문이다. 무엇보다 청계천과 무대에 나가 말하는 사람들의 발언들, 그리고 그 위를 스치는 봄바람. 참담한 현실을 유쾌, 상쾌, 통쾌하게 날려버리는 묘한 힘이 있었다.

  한 고등학생이 나와 사실 자기는 공부를 잘 못하는데, 자기보다 이해력이 떨어지는 2MB를 어찌해야 하나라고 했을 때 정말 할 말을 잃었다. 신자유주의를 들먹이지 않아도 이 정권의 수준과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직설적이고 통쾌한 말들이 촛불집회에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힘이 아닌가 싶었다.

  부러웠다. 인간사냥을 당해도 그 분노를 늘 어렵게 표현해서 우리들만의 울림으로 삭이게 만드는 우리들. 그렇게 쉽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말들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우리들의 능력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집회의 끝은 더더욱 심란했다. 애국가를 부르며 국민, 우리 국민을 외치는 모습에서 이주민들의 설움이 설 자리는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중국유학생들에 파시즘적 행동에 대한 분노를 이성이 아닌 또 다른 파시즘적 민족주의로 해결하려는 모습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히틀러도 제 국민은 죽이지 않았다는 지나가는 시민의 발언은 가슴을 아리게 했다. 아름다운 촛불의 이면을 느껴야 하는 내가 불편했다.

  이렇게 또 제자리다.

  이렇게 또 참담함의 자리를 맴을 돌고 있다.

  팔짝 폴짝 뛰어오르는 청개구리가 되기에는 너무 나이를 든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