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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차차차'

[별+별 시선] 나의 성별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3호] 반차별, 작성일 : 09-10-12 15:05 / 조회 : 4,818
 webzine_3_1.txt (4.3K) [33] DATE : 2009-10-12 19:55:47


 
 [별+별 시선]   

 나의 성별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박봉정숙 (한국여성민우회)
나는 내가 여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여자다.

얼마 전 여자육상경기에 출전한 한 선수가 뛰어난 경기성적으로 금메달을 차지하게 되면서 그 선수에 대한 성별논란이 시작되었다. 그 선수의 근육질 몸, 선 굵은 얼굴, 편편한 가슴, 큰 키, 두터운 목소리는 사람들이 그녀의 성별을 의심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

세메냐 선수가 골인지점에 달했을 때 찍힌 사진을 보았다. 옆에서 달리던 선수들과 피부색, 머리길이를 제외하고 근육질 몸, 편편한 가슴 등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왜? 세메냐선수는 ‘여성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이것이 그녀가 혹시 ‘그’가 아닐까를 의심받고 결국 검사받게 된 결정적 이유이다.

남성의 특출한 능력은 ‘초인적’이라는 수사를 얻게 되지만 여성의 특별한 능력은 ‘남자같다’‘남자만큼 한다’, ‘거의 남자네’라고 묘사 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자만도 못하다”, “여자도 할 수 있는 일을...”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여자보다 낫다”, “(능력이 뛰어남이) 여자같다”, “여자만큼 한다”, “여자 몫을 한다” 라는 말은 들어본 기억이 없다.

뛰어난 성적을 보인 한 여자육상선수가 성별을 의심받는다는 뉴스를 들었다는 말을 친구에게 전하니 친구 왈, ‘그러면 심하게 경기성적이 안 좋은 남자선수는 혹시 여자는 아닌지 검사해보라 그래~, 참나’라고 대꾸한다.

능력 있는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공포, 혹은 그런 여성은 남성이길 바라는 남성 ‘동성’사회의 코메디? 를 비꼬고 있을 즈음, 결국 이뤄진 성별검사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양성구유란다.(‘양성구유’라는 말은 동물적인 어감이 있어 IS[intersexual] 또는 간성으로 부르는 것이 더 낫다고 한다.)

알고 보니 간성이라는 뉴스에, 그녀가 ‘뛰어난 여성’이기에 받았을 박해를 논하던 우리들, 순간 움찔했다. 그러나 돌아서며 생각한다. 왜?

간성이라는 조사결과는 그녀가 ‘그녀’라는 것을 흔들 수 있는 아무런 힘도 갖고 있지 않다. 그녀는 운동선수이다. 남자경기, 여자경기 외에 간성경기가 따로 있지 않다. 이 세상은 성별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고 있고, 두 가지의 성만 존재해야 하는 이 세상에서 그녀는 자신이 ‘여성’임을 택했다. 그리고 그녀는 여자경기에 나갔다. 논리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본인이 여자라고 우긴다고 다 여자냐고 누군가가 물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렇게 답해 보자. 그럼 누가, 무엇으로 여자임을 결정하는가?

세메냐 선수가 ‘남자’가 아니냐고 의심받을 때 그녀가 ‘여자’가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한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오고 갔다. 한 전문가의 이야긴 이렇다. 운동심리학자인 로스 터커 박사는 "남성의 성기가 없다는 것만으로 여성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심지어 유전학 검사로도 확정을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아시아 경제신문. 2009. 8. 20)

오옷, 이건 ‘성별정체성’에 대해 임하는 우리들의 자세 아니던가. 즉, 어떠한 검사나 조사로도 확언할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인 셈이다. 자신이 부정한다면 어떠한 생물학적, 물리학적, 정신과적 조사로도 그 사람의 성별정체성을 확정할 수 없으며, 강요할 수 없다는 즉, 성별정체성에 대한 결정권은 최종적으로 본인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전문가(그것도 반대편-편이란 표현 말고 머 없을까 고민합니다만)에 의해 확인한 것 아닌가.

이번 논란이 커진 것은 남아공육상경기연맹(ASA)에서 세메냐에 대한 성별 검사를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IAFF(세계육상연맹)는 이번 논란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세메냐의 발달된 근육, 굵은 목소리, 남성 같은 외모에 대해 일찌감치 답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육상연맹은 이데올로기화된 전형적 남/녀의 외모를 가지지 않은 모든 선수들에 대해 동시에 답해야 소위 ‘스포츠의 페어플레이정신’이 실현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모든 선수들의 성별정체성을 확인해줄 수 있는 기준을 세계육상연맹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선수들은 여성 같은 외모, 남성 같은 외모의 기준에서 몇 개를 통과하면 진짜 자신의 ‘성별’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말이다.

긴 머리 남성, 짧은 머리 여성은 말할 것도 없고 자궁 없는 여성, 유방 있는 남성, 콧수염 난 여성, 겨털 없는 남성, 목젓 없는 남성, 굵은 목소리의 여성. 전형화된 남/녀 만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그야말로 믿음의 세계이고 실제 세상은 구획화된 성/별 정체성을 뛰어넘는 구체적인 인간들로 구성된다. 신조차도 남이기에 나의 성별정체성을 판단할 객관적 기준을 댈 수 없고, 결정할 수 없다.

세메냐와 마찬가지로 간성은 성기 크기 몇 센티미터를 기준으로 남성이 되기도 여성이 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부모가 자신의 성별을 결정하기도 한다. 부조리한 선택의 강요 속에서 세메냐는 성별을 도전받고 그녀의 기록에 대한 도전을 받았다.

세메냐는 금메달을 따기 위해 성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녀는 성별을 선택했고 경기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말이다. 경기를 그저 이렇게 성과 신체적 조건에 따라 열고, 그것으로 등수를 매기는 경기들이 마냥 이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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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 폴 09-10-14 14:35  
흥미롭게 잘 읽었어요. :)

그런데 양성구유보단 간성 혹은 IS으로
부르는 게 더 낫다고 한다는 부분을 읽다가 든 생각-

간성의 간이라는 글자가 한자로 사이 간(間)인 것 같은데요.
무엇과 다른 무엇 사이라고 하는 뜻일텐데, 왠지 좀 고개가 갸우뚱한달까요.

여기서 무엇과 다른 무엇을 남/여로 나눠진 걸로 본다면 
소위 남자도 여자도 아닌 성으로 간성이라 지칭한다는 것 자체도
이분법적 성구도 내에서 세메냐 같은 이들을 보려는 뉘앙스가 있지 않나 싶네요.
엔쥐 숨 09-10-16 10:57  
엣지 폴/ 더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어야 겠어요^^
글구 박봉/ 글 잘 봤어요~
여전히 엣지 폴 … 09-10-23 13:20  
풍부하게보다도 적절하고도 '간성'인 그들이 원하는 언어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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