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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시선] 평택에서 '여성'으로 존재하기/연대하기
[3호] 반차별, 작성일 : 09-10-12 14:17 / 조회 : 3,408
 webzine_3_3.txt (5.6K) [28] DATE : 2009-10-12 19:54:41


 
 [별+별 시선]  

 '평택'에서 여성으로 존재하기/ 연대하기  

                                                            
                                                                                                                       신기루 (한국여성민우회)


감정이 너무나 끓어오르던 시간을 지나면, 그토록 다급했던 모든 것들은 저 멀리 배경이 된다. 둥그런 마음으로 화해가 찾아오기도 하지만, 비로소 맨 얼굴을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억! 하는 외마디의 물음으로 남은 몇 가지 질문들은 이제 77일 이라는 시간을 뒤로, 냉정을 신뢰할 수 있는 시간이 온 듯하다.

평택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 앞은 연일 언론에서 보도되는 모습과 마찬가지로, 혹은 그 곳에 가 있는 활동가들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새된 소리들 그대로였다. 경제위기담론이 지배하던 상반기, 어느 사업장 한 군데에서 싸움이 나겠거니 했는데 그곳은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이 있는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이었다. 이 싸움은 정리해고 싸움의 상징이 되었고 생생여성행동(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노동자 회 등의 여성단체들이 모여 경제위기 및 여성일자리 문제를 가지고 연대하는 단위, 2009년 상반기 만들어져 현재까지 활동중임.)또한 여기에 연대했다.


#1 남편의 투쟁, 아내의 외박

내가 그들을 대면한 것은, 경찰의 폭력진압을 규탄하며 서울경찰청 앞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이었다. 그 자리에서 가족대책위원회 분들을 만났다. 하루하루 공장 옥상에 올라간 남편들의 상황에 마음을 졸이며 “남편! 힘내라!”를 새긴 셔츠를 입고 울분을 토하며 오열하는 ‘아내’를 만난 것이다. 모 사업장 투쟁에서 남편들은 투쟁하는 아내를 잡아 집으로 끌고 갔지만 남편들의 투쟁은 가족의 이름으로 지지받고 있었고, 그녀들의 깊은 오열과 팽팽한 마음의 긴장은 공감과 연민 이외에 다른 감정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았다.


#2 평화의 이름으로 물을 나르다

정리 해고된 노동자들이 올라가 있는 도장공장은 전기, 물, 가스가 차례로 끊겼고 물이 끊긴지 10일째 되는 날,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이 있었다. 안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전달할 한 트럭의 물을 싣고 막아서는 교통경찰, 전투경찰들을 저지하며 나아갔다. ‘시민사회단체’는 일정정도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안에서 중재와 화해의 역할을 암묵적으로 수행하며 여론을 대변했다. 물을 전달하겠다는 중립적으로 보이는 메세지는 그 어떤 세력보다도 가장 멀리 전진할 수 있었다. 회사측 임직원들과 그들을 보호하는 경찰은 정문 앞까지를 허용했다. 시민사회단체라고 하지만 기자회견부터 모인 사람의 대부분은 여성들이었고 (만날 수 있고, 밖에서 발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지만)함께 있었던 쌍용측 사람들은 가족대책위의 여성들이었다. ‘여자들이 물이라도 주려는 건데!’ 는 ‘무조건’ 정당했다. 물, 생명, 평화는 ‘여성’과 묘하게 결합해 하나의 코드가 되어 그 날 공장 앞에 존재했다.


#3 전투복을 입은 여경을 만나다

평택에 갔더니, 생전 처음 보는 전투복을 입은 여경이 있었다. 여자들이 다수인 집회에서는 여경들이 나온다. 평화집회 보장 또는 평화진압(평화진압이라는 게 있을 수 있겠냐마는)을 위해서,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인데 기자회견을 마치고 보도블럭 위까지 참가자들을 몰아세우더니 남자 지휘관이 해산하지 않으면 모두 검거하라는 마지막 메가폰 방송을 한 후 몸싸움이 이어졌다. 여성인 몸들(참가자 쪽 대오)은 남자 전경들을 대할 때 보다 조금은 덜 긴장하면서 이길 수 있겠다는 직감도 주었다. 여성참가자들이 명령한 남성지휘관의 발언에 확! 분노가 치솟았고 여기에 항의하던 중 참가자쪽 대오 뒤편으로 남성 참가자의 외침이 들렸다. “자자, 여경들!”하고 지휘관을 자처하더니 뒤로 몇 보 우로 몇 보 하면서 명령을 했고 주변의 몇몇은 이 상황을 우스워하면서 그의 센스를 지지했다. 이어서 흥분한 남성 참가자 일인은 여경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야! 너네 강간이나 당해라!”


#4 어린 여자가 되다

도장공장 위로 헬리콥터를 타고 전경들이 투입된 날, 진압작전 당일이었다.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고 기차를 타고 택시를 타고 평택으로 갔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와 가족대책위원회와 나란히 기자회견을 했고 마치고 나서는 공장 밖에서 좌시하는 상황이었다. “폭력대신 평화를! 정리해고 대신 노동인권을!” 이라는 피켓을 들고 달빛시위에서 하듯, 순례를 하듯 평택공장 언저리를 돌고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9명이었다. 짧거나 긴 치마를 입거나 반바지나 바지를 입거나 한 여자들이 나란히 줄을 지어 가는 풍경은 누구에겐 색달랐나 보다. 일당 28만원을 받는다는 용역, 구사대들. 그들은 구사대들이자 4-50대의 남성이었고 맞은편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우리를 향해 반말과 ‘~년’ 류의 욕을 시작했다. 자신들이 더 잘 감상할 수 있도록 다리를 오므리거나 곧게 서라는 둥의 말을 했고, 우리가 대응하자 마치 자신의 힘을 과시하듯 양 다리를 쫙 펼쳐 보였다. 가운데 뭐 달린 거 보라고? 자기처럼 다리를 쫙 벌리라고?


그곳은 전장. 그래서?

칠괴동 공장은 회사와 노동자가 싸우는 거대한 전쟁터이다. 전투경찰은 조금이라도 저지선을 넘으면 다가와서 위협했고 교통경찰은 바로 귀 옆에 대고 호루라기를 부르면서 물러나라고 했다. 고막은 찢어질 지경이었다. 회사측이 방송하는 선무, 선전방송은 낮밤 없이 이어졌고, 윤도현 류의 강한 락 음악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전경들은 천막을 부수거나 방패를 갈거나 줄을 지어 이동했다. 용산 진압작전 때 사용했던 컨테이너박스는 존재자체로 마음이 스산했다. 소방차는 좁은 길을 가득 메우며 사람을 치일 것처럼 오갔다. 신경은 최고조로 팽팽했으며 조롱, 욕설, 비난, 혐오는 사방에 널려있었다. 공포감을 조장하고 위협에 위협을 더하는 것은 전략이자 전술이었다. 전장에서 여성임은 그런 전술을 구사하기 참 좋은 정체성이다.


나는 이 연대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여성’노동자들의 싸움에 연대하는 것만이 여성운동인 것도 아니다. 다만, 해고 싸움에서 아직도 전형적인 가족대책위를 만나는 것, 대오에서 여성을 공격하는 짓을 겪는 것, 연대가 아니라 ‘여자’로 환원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매우 언짢다. ‘아내’로 호명하고 ‘평화’의 상징으로 오독하고 ‘여성’으로 전시하는 일은 노동자의 편에 연대하는 진보남성과 일당 받고 구사대 뛰는 성폭력범이 다르지 않다. 급박하기 때문에 혹은 거대한 노동자 싸움의 중심에서 이런 종류의 일은 비일비재한데다 사소한 일이므로 그래서, 반복된다. 투쟁의 현장은 전장이다. 그곳에서도 가부장은 또 하나의 전선 너머에 선명하게 존재했다. 여성 투쟁사업장에서 가대위를 만난 적이 있던가? 아줌마, 여자로의 환원 없이 온전히 존재할 순 없을까? 급박의 급박을 다투는 그 순간에 이런 복잡한 심경을 가감 없이 말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검열하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단적으로, 짧은 치마 입고도 즐거운 마음으로 연대하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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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09-10-14 20:28  
글 잘 읽었어요~ ^^
09-10-16 11:08  
저두요!!! 즐거운 마음으로 연대하고 싶어요!!
꼬깜 09-10-16 13:58  
찐하게 공감하며 읽었슴돠.
아 그 다리 벌리는 장면. 참 다시 생각해도 울화가.
하이디 09-10-21 15:20  
두 번 읽었어요^^
많이 공감하고 이 글을 쓰면서 고민 많이 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은 여성 투쟁사업장에서도 쌍용차를 본받아 가대위를 움직이게 하려는 흐름이고 대세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직접 투쟁하고 있는 여성사업장 동지의 "가족들의 지지는 고사하고 말리지나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맴도네요... 부당해고에 맞서는 정당한 싸움에서도 서열이 있음이 왠지 더 서러워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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