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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차차차'

[상상더하기] 안개 속을 더듬으며 나아가듯 : 주춧돌 놓기
[2호] 반차별, 작성일 : 09-08-22 00:57 / 조회 : 3,349

[상상더하기]

안개 속을 더듬으며 나아가듯
- 반차별운동 주춧돌 놓기


공현(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사실, 아직도 나는, 반차별운동이 ‘뭔지’를 잘 모르겠다. 하기사 내가 하고 있는 청소년운동이 뭔지도 딱 한 마디로 깔끔하게 설명해줄 수가 없는 나로서는 당연한 건가? 하지만 반차별운동은,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감이 딱 오지를 않는다. 다양한 차별에 맞서는 운동들을 묶어서 분류적으로 “반차별운동”이라고 이름 붙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그게 아니라 활동을 해나가기 위해서 실천적인 차원에서 반차별운동이라는 걸 생각해보려니까 이건 뭐, 막막하다.

  그랬기 때문에 올해 상반기에 반차별공동행동이 해온 상상더하기들을 총결산하고 반차별운동의 원칙, 반차별공동행동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 세 번째 상상더하기에 참여하면서, 조금은 이런 막막한 게 덜해질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안개 속을 더듬어 길을 찾아가는 느낌이라고 하면 대충 비슷할 것 같다. 그래서 좀 그런 길을 찾았느냐고? 글쎄, 그건 글을 끝까지 읽고서 한 번 판단해보시길.



피해자 중심주의 & 피해자화 하지 않고 말하기 & 피해자가 말하기

  반차별운동의 주춧돌 ― “원칙”이라 그러니까 좀 경직된 것 같아서 “주춧돌”로 부르기로 했다. ― 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먼저 얘기한 이야깃거리는 여성주의 운동 또는 반성폭력운동에서 이야기하는 ‘피해자중심주의’였다. 뭐 하나의 예시처럼 이야기된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차별의 피해자들의 경험에 초점을 맞춰서 운동을 해야 하는가 하는 운동의 원칙으로서의 고민도 같이 담겨 있는 논의였다.
  차별 피해자들의 경험과 입장에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은 일견 옳은 말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피해자들의 경험을 해석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차별의 피해자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약하고 힘없는 피해자로 보이게 함으로써 자력화를 가로막는 요소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그래서 작년에 했던 상상더하기의 중요한 주제 중에 하나가 “피해자화하지 않고 차별을 말하기”였지.
  하여, 세 번째 상상더하기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성폭력상담소의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 친구사이의 G보이스, 장애여성공감의 춤추는 허리와 같은 사례들을 같이 살펴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차별과 폭력의 피해의 심각성을 말하는 방식은 오히려 차별의 피해자를 타자화시키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걸 말하지 않고 즐겁게 하는 방식으로 하면 차별이 없는 줄 알까 두렵다 …… 와 같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고민은 깊어만 갔다. 이렇게 두 가지 측면이 모두 무시할 수 없을 때 보통 그렇듯이 결론은 ‘case by case'.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방법을 융통성 있게 사용하자는 것 정도로 정리되었다. “맥락과 통합적 고려” 대충 그런 말로.
  오히려 이런 논의의 과정에서 나왔던 더 가치 있는 이야기는 ‘당사자가 말하게 하자’라는 지적이었던 것 같다. 반차별공동행동의 사람들은 차별-반차별을 언어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그 언어가 누구의 언어로 누가 말하는 것이었나 하는 질문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반차별을 우리가 언어화하려고만 했지 차별을 당하는 당사자들이 말하게 하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무신경하지 않았나 하는 이야기들. 그렇게 해서, “당사자가 차별을 해석하는 능력을 갖게 하고, 직접 스스로 즐겁게 차별/피해를 이야기하게 한다.”라는 주춧돌이 놓이게 되었다.



통합적으로 드러내기

  반차별운동의 주춧돌을 뭘로 할지 이야기하면서 각 단체들 별로 의견들도 이것저것 내놓았고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그 중에서 내 마음대로 중요도를 매겨서 또 하나를 꼽자면 차별을 맥락적,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드러내자는 것이 있었다. 차별을 어떤 특정한 영역, 특정한 내용의 차별의 현실과 피해만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차별의 맥락, 차별당한 당사자의 삶을 통합적이고 전체적으로 드러내자는 것이었다.
  차별도, 그리고 차별을 경험한 당사자도 모두 사회적인 맥락과 자신이 살아온 삶이 있다. 그리고 차별은 그런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그 사람이 살아온 삶 속에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차별이 파편적으로, 타자화되어서 남 일인 것처럼 현상으로만 이해되고 차별의 당사자가 ‘피해자’로만 비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노숙인을 인터뷰하면서 노숙인으로서 어떤 차별을 당했는지 묻기보다는 그 사람의 생애사 전반을 물어보고 다루는 것이 차별을 드러내고 전달하는 데 더 효과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소 비슷한 맥락에서 기존에 있던 해석과 사람들의 인식, 언어의 그림자와 이면을 보는 활동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사람들이 어떤 차별이나 사람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해석틀과 말들의 그 이면을 통합적으로 보고 드러내는 활동을 반차별운동이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상의 욕구를 긍정하고

  이날 이러쿵저러쿵 정말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같이 반차별공동행동 활동을 하는 다른 사람들도 반차별공동행동에서 하는 반차별운동이란 어떤 것일지 고민하고 있었고 그래서 더 활발하게 많은 의견이 오갔던 것 같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던 인상 깊었던 주춧돌이 있었다. “개인의 욕구, 일상의 욕구를 일단 인정하자.”
  우리는 흔히 정치적 올바름 등의 기준으로 자기 자신을 검열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때론 서로 충돌하는 욕망들 때문에 어떻게 해석을 하는 게 좋을지 모를 상황 또는 복잡한 갈등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세 번째 상상더하기를 하면서 나왔던 중요한 주춧돌 중 하나는, 사람들의 일상의 욕구를 일단 인정하고서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운동을 함에 있어서 운동이 어려워지고 갑갑해지고 힘들어지기보다는 즐겁고 더 현실에 밀착한 운동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원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차별운동의 주춧돌>

◉ 당사자가 차별을 해석하는 능력을 갖게 되는 주체가 되도록 하자. 당사자가 스스로 직접 즐겁게 피해/차별을 이야기하게 하자.

◉ 피해를 드러내거나 피해자화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걸 융통성 있게 쓰자.

◉ 지금까지 해석 틀의 이면, 그림자를 보자.

◉ 욕구가 경합하고 충돌하더라도 개인의 욕구, 일상의 욕구를 일단 인정하고 시작하자.

◉ 구체적인 차별 현상만 말하는 게 아니라 삶을 통합적으로 드러내면서 차별의 맥락을 드러내자.

◉ 차별을 내 문제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하자. 자기 삶에서 차별을 발견하게 하자.

◉ 기존 운동의 원칙과 관성에 집착하지 말자.

◉ 차별 현장에 발을 딛고 출발하자.

◉ 즐겁고 명랑하게 활동하자.

◉ 쉽게 하자.



  이렇게 이야기되었던 원칙들을 보면 반차별공동행동이 앞으로 어떤 운동을 해나갈지 좀 감이 오시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도 딱 감이 오지는 않는다. 내가 좀 둔해서 그런지, 반차별공동행동의 반차별운동이 어떤 것인지는 구체적인 운동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세 번째 상상더하기를 하면서 그렇게 구체적인 운동을 해나가기 위한 출발점과 길을 대충은 짚어본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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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기루 09-08-24 15:34  
ㅋㅋ 저거 맥박 아니라 맥락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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