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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차공's 아나토미] 그이와 함께 한 1년 9개월 : 반차별공동행동 연대의 의미
[2호] 반차별, 작성일 : 09-08-22 00:50 / 조회 : 3,715


[반차공's 아나토미]

그이와 함께 한 1년 9개월
- 반차별공동행동 연대의 의미

박석진(인권운동사랑방)

 

그 이를 만난 지 벌써 1년 9개월이나 되었습니다. 처음 그이를 만나게 된 건 정부가 만들려고 했던 차별금지법이 오히려 차별을 조장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차별을 금지하겠다는 법이 오히려 차별을 조장한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고, 그만큼 우리의 사랑은 처음부터 불같이 타올랐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사랑에 동참했고 또 지지해줬습니다. 차별을 법으로 금지할 수도 있다니! 그런데 누구는 차별하면 안된다고 이름을 분명하게 적어놓은 반면, 또 누구는 차별하면 안된다고 했다가 나중에 이름을 빼버리고! 차별을 법으로 금지하고 또 처벌까지 할 수 있도록 한 건 멋진 일처럼 보였지만, 누구는 차별하면 안되고 누구는 차별해도 된다고 하는 건 그야말로 차별적인 것 같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생각을 같이 했고 또 그런 만큼 우리의 사랑을 뜨거운 눈길로 바라봐줬습니다. 하지만 18대 국회가 끝나면서 차별금지법을 만드는 것은 물 건너간 듯 보였고, 그에 따라 우리의 만남을 다시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계속 만남을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이제 그만 헤어질 것인가. 결국 좀더 장기적인 반차별운동을 고민하고 벌여보고자 그이의 이름을 ‘반차별공동행동’으로 바꾸었습니다. 간단하게 줄여서 ‘반차공’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새로운 만남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이전에 그이와 함께 했던 많은 단체들과 이별을 해야 했고 때로는 새로운 단체들이 우리의 만남에 동참해 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왜 그이와의 만남을 계속 하고 있는지 되짚어보게 되었습니다. 넘쳐나는 많은 연대체들 중에서 그이는 좀 남다른 것 같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제 눈에 안경’이기 때문일까요? 어쨌든 우리가 지속하고 있는 그이와의 좀 특이한 만남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이와의 만남을 어떻게 연대의 언어로 새롭게 정리할 수 있을지 한번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 왜 우리는 그이와 헤어지지 못하는 걸까요.

 

우선, 그이와의 만남은 좀 신기합니다. 많은 일 때문에 피곤하고 잘 풀리지 않는 일과 관계로 인해 스트레스 받고 있을 때 그이와 만나면 좀 즐거워집니다. 물론 그이와의 만남이 항상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우리, 그런 관계는 아니거든요. 그이와 항상 진지하게 만나지만, 왠지 그 만남에는 설레임이 있습니다. 그이와 만나서 이야기를 할 때 가끔씩은 너무 어려워서 머리가 아프기도 합니다. 그이와 만나고 나서 갑자기 많은 일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요. 하지만 왠지 그 일은 그리 싫지만은 않아요. 부담은 될지언정. 더 잘 하고 싶고 더 신나게 하고 싶어서 부담이 될 때도 있지만, 그이는 항상 새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매번 다른 이야기들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그 다른 이야기들을 서로 귀 기울여서 열심히 들어줍니다. 누구 하나 그이를 독차지하려고 욕심을 내거나 가르치려고 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이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은 왠지 쉽게 친구가 되는 것 같습니다.

 

또 그이와의 만남은 좀 끈끈합니다. 주로 일을 통해서 만나는 ‘동지’들은 일이 끝나면 관계도 일과 함께 스윽~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있지요. 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요. 하지만 그이와 만나면 왠지 서로서로 친구가 되는 느낌입니다. 동지들과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친구들과는 삶에 대한 고민을 나눕니다. 활동하면서 어렵게 느껴졌던 문제의식들, 개인적으로 잘 풀리지 않는 관계,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생각할 때 느껴지는 막막함, 심지어 누구에게도 잘 이야기하지 못했던 연애 스토리까지. 친구로서 마음을 열어 보이고 진지하게 조언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 속에서 서로의 삶을 좀더 가까이에서 알아가게 되고 또 이러한 마주침 속에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됩니다. 삶이 주는 진지한 무게감. 그리고 이 사회의 차별 현실 속에서 삶으로 부딪히는 더 많은 생생한 차별의 문제를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또 그에 대처하는 친구들의 강인하고 발랄한 어떤 힘도 엿볼 수 있고요. 한때는 악명 높은 밤샘 뒤풀이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고, 또 서로의 집으로 초대해 밤늦게까지 연회를 여는 ‘순회 파티’로 끈끈함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그치만 그이와의 만남은 좀 이상하기도 합니다. 15개 정도 되는 적지 않은 단체들이 그이와 함께 만나고 있습니다. 각각 뭔가 공통점을 찾기 힘든 다양한 단체들이 이상하게도 그이와 함께 여기 모여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함께 보는 시간도 적지 않아요. 만날 이런저런 회의다 상상더하기다 워크샵이다 해서 자주 모이고 또 끙끙 머리 싸매가며 어려운 논의들을 하지만, 막상 사람들은 “도대체 그이와 만나면 뭘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해요. 반차별과 관련해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HIV/에이즈 감염인 등 다양한 의제로 다양한 고민들을 나누고 또 새로운 문제의식을 풀어내기도 했지만, 뚜렷한 정치적 의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서로 다른 다양한 운동들이 어떻게 서로 만나고 배우면서 더 넓은 운동의 의제를 각각, 그리고 함께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목표로 가치들을 중심으로 연대해왔어요. 그래서 실제로 그이를 통해 많이 배웠고 운동에 대한 이해와 고민도 더 넓어지고 깊어졌다고 자부합니다. 그이와 함께 해온 단체들이 저마다 그이를 통해 얻은 성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과의 크기도 다를 수 있지요. 다만 그 성과를 매우 소중히 여기고 자기 운동의 변화로까지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단체와 운동들이 분명히 있다고 하는 점은 매우 중요한 연대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연대란 함께 공동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을 나누어맡고 맡은 일을 잘 집행해내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연대를 통해 나와 그들의 운동과 삶이 넓어지고 긍정적으로 변화되는 과정도 함께 포함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서로의 변화를 전제로 하지 않는 연대를 과연 ‘연대’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그래서 난 그이와의 만남을 통해서 ‘반차공’이라는 이름으로 해내고 있는 일보다 훨씬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렁이를 만나서 사랑방이 변화하고, 사랑방을 만나서 한국성폭이 변화하고, 한국성폭을 만나서 아수나로가 변화하고 아수나로를 만나서 장애여성공감이 변화하는 등 우리는 이미 그이를 통해 많은 긍정적인 변화들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그이의 이름으로 드러나지도 또 꼭 그이의 이름으로 드러나야 하지도 않지만, 그건 확실히 그이와의 만남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었다고 믿습니다.

그 이가 좀더 뚜렷한 정치적 의제를 갖고 있지 못한 모습은 좀 안타깝긴 합니다. 그리고 그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좀더 많은 대중들과 만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도 안타깝지요. 그래서 올 하반기에는 안타까운 점들을 좀더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이가 다른 연대체들처럼 되긴 힘들 것 같아요. 그이는 네트워크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의사 결정 과정이나 집행 체계가 중앙집중적이지 않습니다. 특정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 단일한 입장을 갖는 것도 쉽지 않은 편입니다. 각각 다른 운동에 기반해 있는데다가 우리의 연대는 그 기반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차공은 그 ‘흔한’ 성명서 하나 제대로 발표해보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동의하는 정세 사안이 아니라면 반차공 전체의 이름으로 무엇 하나 벌여낼 수 없지요. 다만 특정한 사안에 동의하는 단체들이 반차공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알리고 개별적으로 ‘연대’를 조직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이, 참 답답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수평적인 네트워크’라는 실험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반차공 내 ‘소규모 네트워크’ 활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기도 하고요. 물론 아직은 부족한 점이 더 많습니다. 그치만 관계는 만나면서 좀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그이와의 만남은 여전히 즐겁습니다. 그이를 만날 땐 왠지 정신줄을 놓게 돼요. 그래도 이해해줄 거라는 믿음?ㅋㅋㅋ 가끔 사선을 넘나드는 농담을 하면서 “어디 가서 절대 얘기하면 안돼”하며 아웃팅 방지 약속을 받아내기까지 합니다. 또 뒷담화도 서슴지 않습니다. 우리의 뒷담화 대상은 주로 파란지붕과 여의도, 마초, 그리고 ‘밑도 끝도 없는 정상인들’이지만, 그 뿐만 아니라 범위는 넓고 또 넓지요. 이러다 ‘뒷담화공동행동’이 될지도...

 

그이와의 만남은 이제 1년 9개월. 아직 부족한 점도 많고 앞으로 넘어야 할 산도 많을 겁니다. 앞으로 더욱 즐겁고 힘이 되는 만남이 되면 좋겠습니다.

아아...그이를 향한 나의 짝사랑을 너무 고백했나요?






(그밖에 다른 단체들의 이야기는 덧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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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 09-08-22 01:55  
반차별 공동행동 연대의 의미

상반기 내에 결국 밖에서 보이는 것은 홈커밍데이 뿐이겠구나...하다가! 이게 바로 반차공 연대의 매력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비공식적인 것이 공식적인 것을 지배하고 둘의 경계가 없이, 열정으로 마구 일이 커지는 것. 노래하고 술 마시고 연대체가 아닌, 연대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공간이라 매력있는 연대라고 할까요? 연대라는 것이 덩치를 키우고 단위를 키워서 힘을 가하기 마련인데, 반차공은 그런 세만들기를 하지 않고 소통과 교류를 위한 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이 큰 의미입니다. 민우회에 생긴 변화라고 한다면, 반차공을 통해서 소위 "나가고 싶어하는" 매력있는 연대가 생긴겁니다. 서로 바쁘다, 일 많다로 미루던 연대가 거기는 참 매력있는 데라며? 라고 말하게 되는 겁니다. (대개 연대다녀와서, 참 이상하드라 웃기지 않냐? 이런 뒷담화가 나오기 마련인데, 반차공은 자랑투성이랄까...) 민우회가 사무국하는 건 어떠냐? 이런 구식 제안도 없어졌다는 것 또한 변화입니다.
향린교회여성인권 09-08-22 01:56  
"열린 열정으로 즐겁게 연대하는 반차공!"

석진의 글을 보면서 이 평범치 않은 만남이 저희 모임과 제 개인의 삶에 얼마나 참신한 변화들을 안겨 주었는지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되네요.  차별금지법을 통해 드러난 문제의식을 느껴 사람들이 모인다기에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모이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기웃했다가, 만남을 지속할수록 다양한 단체의 사람들이 열려있는 열정으로 즐겁게 연대하는 모습을 접하며 이 만남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어 허우적?대며 지금까지 있게 되었답니다.^^
저에게 이 만남이 좋은 이유는 흔히 숫자놀이로 매김질 당하는 눈에 보이는 무언가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상상더하기 자료집을 낼 때 사용했던 반차별 "횡단열차"라는 단어처럼 인권, 차별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만나게 되는 지점을 따라 길을 내어 서로 오가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생각해 줄 벗들을 만나는 역 대합실 같은? 그런 자연스런 만남의 장이어서 좋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차별없는 세상을 꿈 꾸며 노래하는 나온"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노래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해 준, 저의 정체성을 일깨워 준 소중한 만남입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09-08-22 01:58  
반차별 공동행동 연대의 의미

결국 우리가 모인 것은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냐 싶지만, 사실 연대 활동이라는 것은 결국 연대 이슈를 둘러싼 사람과 세상에 대한 깊은 사랑을 전제로 하는걸 겁니다. 하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사에 대응하다보면, 이슈와 사안과 일정이 적힌 회의록으로 연대라는 내용이 채워지는 건 아닐까, 하는 헛헛함이 남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 헛헛함이 호기심과 재미로 변화하게되는 반차별공동행동은 도대체 어떤 곳일지?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음,,그건! 바로 익숙했던 연대 활동의 형식과, 운동 이슈의 분할을 질문할 수 있는 반차별공동행동 참여자들의 열정입니다. 그리고 그런 연대 활동을 지지하는 각 참여 단체들입니다. <바빠서, 내 운동의 이슈가 아니어서, 시급한 사안이 아니어서..>라는 관성보다는,  <내가 하고 있는 운동의 진정성이 다른 운동의 진정성과 만날 것>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지요.
반차별공동행동은 "사안별로 연대하는 활동"이 아닌 "가치로 연대하는 활동"의 새로운 시공간을 경험하게 합니다. 각 운동 영역에서 운동의 베테랑들이라고 여겨지는 이들도, 이 곳에 오면 마치 처음인 것처럼 서로의 이슈를 격의/검열 없이 나누고 변화를 즐거워 합니다. 인식 차이에 대한 발견은, 방어적인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보다,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뭉글뭉글 만들어냅니다. 서로의 운동이 서로에게 성찰을 가능하게 하고 '세상의 변화'를 더 즐겁게 상상하게 하니, 어찌 이 연대 활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수나로 09-08-22 01:58  
아수나로 서울지부 모임 때 "반차별공동행동 연대의 의미"가 뭐냐고 물었더니 그냥 담당자들이 알아서 쓰라고 할 정도로, 아수나로에서 반차별공동행동은 '연대체로 참여하고 있는 건 알겠는데 뭘하는지 잘 모르겠는' 소외받는(???) 연대 활동입니다 ^^;
심지어 한 회원은 이렇게 말했지요. "반차공 활동에 대한 느낌은 지구가 동그랗다는 것과 같다." 지구가 동그랗다는 건 알고 있고 그 동그란 지구 위에 살고 있지만 지구가 동그랗다는 걸 평소에는 실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반차공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알고 반차공 활동 소식도 듣고 참여도 하고 우리가 하는 활동이 결국 '반차별' 활동이지만, 반차공에 아수나로가 연대하고 있다는 걸 평소에 실감을 못하겠다는... 그런 이야기죠;;
아무래도 아수나로 회원들은 반차별공동행동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좀 어려워합니다. 에이즈 등에 대한 상상더하기 때는 참여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는 회원도 있지만요. 어렵지만 필요하고 좋은 것 같고 그래서 더 귀를 기울이며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것, 그게 아수나로에게는 반차별공동행동 연대의 의미 같아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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